Q.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A. 한글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형태를 표현하기도 하는 서체 디자이너 김정진입니다. 저는 글자의 역할을 확장하는 데 관심이 많아요. 글자가 단순히 기록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자신만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독립적 시각물이라는 입장
에서, 글자 스스로가 고유의 목소리와 표정으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합니다. 더불어 글자를 만드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글자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아요. 하하, 어쩌다 보니 고민만 늘어놓게 되었네요!
Q. 고민이라기 보다 정진 님만의 탐구 주제를 듣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에요. 인스타그램 계정에 3년째 꾸준히 업데이트하고 있는 레터링 작업들도 모두 김정진 글자 탐구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A. 제가 일기처럼 업로드하고 있는 데일리 레터링은 사실, 조그만 반항심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예요. 서체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작업한 시안들이 거듭 탈락하는 게 아쉬워서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죠. 회사에서 가르쳐주는 좋은 서체의 기준들을 습득하는 것이 중요한 시기였지만, 서체에 대한 저만의 생각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기에 프로젝트로 발전시켜 꾸준히 진행했어요. 지금은 말씀대로 저만의 글자 탐구를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하기도 하고 글자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기도 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재미를 느끼고 있죠.
Q. 글자를 만드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닌 소통을 도모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네요. 2020년에는 꽃신체를 완성하셨죠? 꽃신체는 어떤 서체인가요?
A. 저는 서체가 각 나라의 문화를 반영한다고 생각해요. 서양 문화권의 영문 서체를 보면 직선적이고, 동양 문화권의 일본어 서체를 보면 섬세하고 곡선적인 특징이 있죠. 그리고 이는 서양, 동양의 문화와 연관이 됩니다. 이러한 생각으로부터 출발하여 저는 우리나라만의 문화와 감성이 담긴 서체를 만들고 싶었어요. 서체의 가장 기본이 되는 획에서부터 우리 문화의 특징을 느껴볼 수 있도록, 강약이 적어 곱고 차분하지만 부드러운 곡선미가 살아있는 획을 세웠죠. 이를 기본으로 탄생한 꽃신체는 기존 바탕체와는 다른 부드럽고 서정적인 인상을 지닙니다. 보면 볼수록 우리 문화의 특징인 유연한 시선, 차분한 깊이, 소담한 아름다움이 천천히 배어 나올 수 있도록 작업했습니다.
Q. 대학교 졸업 전시 때 처음 선보인 서체를 다듬은 것이라고 하던데, 처음에도 같은 콘셉트로 작업했나요?
A. 졸업 전시 때의 꽃신체는 화려했어요. 꽃신이 빨간색이니까 불꽃 휘날리는 느낌으로, 뾰족뾰족한 인상으로 디자인했죠. 그 나름대로 매력이 있었지만, 글자에 문화를 담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지 탄탄한 이론 정립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흐르니 자연스럽게 작업이 객관화되는 시기가 찾아오더라고요. 그때부터 작업을 다시 시작했어요. 이론부터 새롭게 점검하느라 6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저만의 생각을 확립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Q. 꽃신체와 함께 서체 디자이너로서 한 단계 성장한 셈이군요! 그렇다면 꽃신체를 완성하고 난 지금은 글자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변화, 확장되고 있나요?
A. 꽃신체를 만든 6년이 글자에 문화를 담는다는 큰 주제를 확립하는 시기였다면, 완성하고 난 지금은 생각에 확신을 가지고 더 멀리 나아가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다행히 꽃신체 완성 이후에 많은 분들이 제 생각에 공감해주셔서 건강한 자신감으로 꽃신체 이후를 도모해보게 됩니다. 앞으로는 더 다양한 콘셉트로 작업을 발전시켜보고 싶어요. 한국 문화는 다양한 결을 지니잖아요? 꽃신체처럼 잔잔한 게 있다면 케이팝처럼 강렬한 것도 있을 텐데, 이제부터는 그런 다양한 이미지를 글자로 표현하면서 사람들과 우리 문화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싶어요.
Q. 꽃신체, 어디에,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요?
A. 전국 꽃집에서 사용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요! (웃음) 아무래도 꽃신체가 우리 문화와 감성을 담아 만든 서체이다 보니, 한글을 배우는 학생들이 제 글자를 보고 우리 문화를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외에도, 우리 문화를 알리는 많은 곳에서 다양하게 사용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글자의 역할 자체를 넓혀나가고 싶어요. 다른 예술 작품처럼 글자 자체가 작품처럼 감상되는 문화가 생겨난다면 좋겠어요. 그런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저도 꾸준히 다양한 작업을 시도해보고 싶고요. 무엇보다 제가 만든 틀에 스스로 갇히는 것을 경계하면서 우리나라 서체 디자인을 대표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습니다. 꼭 유명하고 인기 많은 서체를 만들어서라기보다 한국 문화를 담은 서체 작업을 통해, 우리 서체 디자인을 대표하고 싶어요. 그렇게 해서 한글 서체를 알리기 위한 세계 일주를 할 수 있게 된다면, 완전 금상첨화겠네요!